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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의 편지 - 중독별 회복 사연

남편에게 중독 문제가 있으면 아내가,
그리고 자녀에게 중독문제가 있으면 부모가,
남편이나 자녀의 중독 심각성에 따라 가족들도 동일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중독증 회복에는 가족들의 회복도 함께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가족들의 회복편지들은...
동일한 중독문제로 고통 속에 있는 가족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며,
중독자 분들에게도 가족들의 힘들고 어려움을 이해하여~
서로 회복되는데 도움이 되어 드릴 것입니다!


[중독자만 회복되고 가족들이 회복되지 못하면~
가족 간에 회복불균형(Unbalanced recovery) 때문에 재발 위험이 있습니다!]

-이해왕 선교사-

간증 세미나 - 가족 회복 사연


1. 남편의 도박을 통해 들은 하나님의 음성

저는 1996년 교포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을 처음 보았을 때 무척 인상이 좋아보였고 또 양쪽 집안 어른들의 소개로 이루어진 만남이었기에 전 아무런 망설임 없이 3개월 만에 결혼을 하고 남편을 따라 미국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미국에 와보니 남편은 이미 도박에 깊이 빠져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고 시부모님 역시 그런 남편의 도박으로 인해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는 듯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이런 상황을 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도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어떻게든 남편의 도박을 막아 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순식간에 몰아치는 도박의 폐해 앞에서 전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습니다.

시부모님은 저희의 결혼을 통해 남편의 도박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보려 하셨던 것 같았지만 이미 중독이 되어 있던 남편의 도박 앞에 저희의 결혼은 아무런 해결책도 되지 못한 채 전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억울한 눈물만 쏟아내야 했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도박자 가족들을 위한 회복모임이라는 곳을 다니며 도박중독자인 남편을 받아들이고 이해해 보려고도 했지만 도박중독자 아내로서의 내 자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도박에 정신이 팔려 가정은 돌아보지도 않고 저에게 이혼까지 요구해대는 남편을 이해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는 것은 저에겐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저의 일상은 분노와 증오의 눈물로 채워졌고 그렇게 울다 넋이 빠질 때면 영문도 모르고 화장실 휴지를 길게 뜯어다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는 두 살배기 딸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 아이가 먼저 죽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도박으로 인한 불신과 감당할 수 도 없는 도박 빚, 또 나타나지도 않을 남편을 기다리느라 가슴조리며 길거리에서 몇 시간씩 배회하는 것도 이제 저에게 당연한 일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딸아이를 혼자 차에 남겨둔 채 도박장에 가버리는 일도,
또 픽업 오기로 한 남편이 연락도 끊은 체 나타나지 않아 아이들과 추위에 떨며 길에서 밤을 지새야 했던 일도 저희 도박자 가족들 사이에선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도박중독자와 삶을 견디느라 미치도록 진저리쳐지는 가슴은 단 하루도 진정될 날이 없었고 결국 터져버린 분노와 증오는 철없는 아이들에게 모두 퍼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나날을 견디어 가던중 저는 저와 같이 도박중독증에서 회복된 한 집사님의 소개로 교회로 인도받게 되었고 전 그분을 따라 우는 아이를 들쳐 없고 새벽기도 부흥회등을 쫒아 다니며 살려 달라고 살려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무신론자였던 저에게 사실 그것은 벼랑 끝에 매어 달린체 목숨을 구걸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런 처절한 간구 속에 저를 불쌍히 여겨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제 삶 속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 끔찍했던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꽁꽁 묶여 있던 원망의 사슬들도 그 분의 따뜻한 사랑으로 조금씩 풀어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 계속해서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을 나의 주인이요 나의 참된 아버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분의 창조섭리 안에서 그동안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제 삶도 새롭게 정립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 모든 환경도 우연이 아니라면 이 가운데에 분명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하나님 안에서 이 모든 상황을 재조명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환경 속에서 이루어내기 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내 삶이 온전히 그 뜻에 맞추어 지는 그날 이 모든 악몽에서도 깨어날 수 있을 꺼라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루하루 죽음과도 같았던 제 삶속에 한줄기 소망의 빛이 되어 절망가운데에 쓰러져 있던 저를 다시 일으켜 주었습니다.

전 그동안의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는 원망의 절규를 벗어 던지고 하나님께 제가 오늘 하루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 지 묻고 또 물으며 제게 허락하신 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그 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여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 저에게 그 동안 제 방식대로 고집하며 살던 저에 옛 모습을 모두 헐고 말씀을 쫒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원하시는 그분의 뜻을 조금씩 보여 주셨습니다.

전 그 안에서 항상 도박 중독자인 남편에게만 초점을 맞추며 모든 잘못을 그에게만 돌리는 가족들의 안이함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가족들의 회개를 먼저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곧 제가 먼저 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세워 지길 간구하며
말씀과 환경을 통해 온전히 다듬어 가실 하나님의 손에 저를 내어 맡기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의 손을 잡고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절제를 수치심 속에서 낮아짐을 또 뿌리박힌 분노와 증오에서 이해와 용서를 가르쳐 나가셨고 전 그 연단의 불길 속에서 내 자존심 내 고집 내 욕심을 녹여내며 하루빨리 우리가정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다기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저의 그런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도박은 그칠 줄을 몰랐고 급기야는 돌보아야 할 가정과 아이들을 팽개친 체 집을 나가버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현실과 하나님 사이에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힘들고 가슴아파하는 저에게 오히려 우리들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게 하시며 저와 아이들을 저버린 채 도박만을 향해 내달리는 남편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만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또다시 남편에게 초점을 맞추는 제 모습이며 또 세상의 욕심을 쫒아 뒤를 돌아보는 우리 모두의 모습임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저와 아이들을 외면하는 남편으로 인해 제 마음이 그렇게 아팠던 것처럼 저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똑같은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니 뜨거운 회개의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고 결심을 하고도 여전히 부족한 제 모습을 보고나니 그런 저를 오래 참으시고 끝까지 붙들어 주시며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오기을 바라는 소망으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이루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이 내 가슴속에 몰려와 전 또다시 흘러내리는 감사의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전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빚진 자가 되어 제가 받은 용서로 남편을 용서하고 제가 받은 그 사랑으로 남편을 사랑하며 그동안 외면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도 함께 지는 주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안에 주님의 뜻과 주님의 나라가 세워져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남편과도 함께 해 주셨고 제 삶속에 주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들을 하나씩 신실하게 이루어 가고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쫒아 기약도 없이 집을 나간 남편을 다시 가정으로 돌이켜 주셨고 또한 교회와 이곳 회복 모임으로도 인도해 주셨습니다.

새롭게 허락해 주신 직장에서 일도 열심히 하고 아이들 숙제도 봐주며 그동안 못 다한 집안일을 돌보며 또, 주일이면 맨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금요일이면 회복모임을 참석하며 이곳 참석자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회복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도박 중독증은 정말 회복이 어려운 병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아마 어느 누구도 우리 가족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이 도박 문제에 대해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 하신 것처럼 도박 중독자에게만 모든 관심의 초점을 맞추기보다 우리 가족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앞에 온전히 서고 우리가 받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성실하게 실천해 나간다면 좋으신 우리 주님께서는 분명 지금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이 모든 문제 보다 더 큰 축복으로 채워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고난 앞에서 좌절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우리들은 그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주께서 허락하신 이 고난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회로 삼고 일어서 영적인 성숙과 중독증의 회복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 그 모든 영광을 돌리며, 또 그 영광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2월 7일 (도박중독 예방 및 치유 세미나에서...)
- 미국 LA Mrs. Lee -

도박 가족 사연들


1. 우리 가정과 회복모임

평소에 남편은 친구를 너무나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했다. 남들이 미국에 가서 생활하면 남편이 가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1992년에 부푼 꿈을 안고 미국에 오게 되었다. 그러나 워낙 잡기에 능하고 오락을 좋아하던 남편은 힘든 미국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어했고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 자신도 도박문제가 이토록 심각해지고 남편과 가족모두가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병들게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그래서 아내인 나는 남편을 위해 덮어주고 변명하며 거짓말로 넘어갔다. 그러나 남편의 도박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고 나는 아무 대책 없이 남편을 지켜보며 불안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아내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도박을 중단시켜보려고 달래보기도하고, 때로는 고함치며, 울부짖어 보고, 무기력과 죄의식에 허덕이고, 그리고 빚 독촉에 허덕이는 남편의 도박 빚을 갚아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럴 때마다 남편은 자신의 힘으로 끊을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거듭 실패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수치심으로 몸을 떨며 하나님께 매달리고 울부짖던 나 자신도 병이 깊어지고 있었다.

잦은 부부싸움 그리고 나의 짜증과 분노와 불신으로 딸아이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남편이 일찍 들어오는 날에도 언제 다시 나갈지 몰라서 불안했고 남편이 들어오지 않을 때는 비퍼와 핸드폰으로 도박장 주위를 전전하며 남편을 찾으려고 안타까운 시간들을 많이 보내야만 했다. 이런 나는 배신감과 수치심으로 지쳐 있었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무기력한 남편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가서는 일주일에 3일은 들어오고 4일은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이혼을 생각하고 있을 때 기독교 방송에서 한인 중독증회복 선교센터에서 단도박 회복모임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나 혼자서 먼저 선교센터를 찾아갔다. 이 선교사의 자세한 설명으로 도박이 병이라는 것과 남편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가족모두가 같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지난 7년 동안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남편을 도왔던 방법들이 오히려 도박을 더욱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침 그 때 남편은 큰 도박 빚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고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나의 회복모임 참석제의에 순순히 응해서 99년 11월 5일 회복모임에 처음 참석했다. 그후 우리 부부는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딸을 친척집에 맡기며 열심히 모임에 참석했고 거기서 도박문제는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위대한 힘에 우리의 생각과 생활을 맡기는 12단계 회복프로그램을 배우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서로 그날 배운 것을 이야기하고 격려해 주는 과정에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회복모임에 참석하면서 우리와 같은 문제로 남모르게 고통받는 많은 다른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새 우리들은 서로 위로하고 기도해주기 시작했고 조금씩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남편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다시 생겼다. 남편이 견디기 힘들어하고 금단현상을 보일 때 도와주는 방법도 배우게 되었고 가정경제를 어떻게 맡아야하는 지도 알게 되었다. 전에는 한달 이상 도박을 참지 못했던 남편이 무사히 100일을 넘기고 15개월이 지난 지금도 도박에 손을 대지 않고 매주 모임에 참석하며 회복의 길을 가고 있어서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것 같던 남편에 대한 믿음도 조금씩 나의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딸아이의 얼굴이 차츰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처럼 도박의 실상을 잘 모르고 수년동안 불안과 고통을 당하는 아내들과 가족 여러 분들에게 용기를 가지고 회복모임에 참석하여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이 선교사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대신한다.

2001년 1월 31일 밤
- 미국 LA에서 Mrs. Kim -

2. 가족이 먼저 알고 변해야!

나는 1982년 8월에 중매결혼으로 미국에 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결혼한지 약 3개월 후부터 자주 밤늦게 돌아와서 어쩌다 왜 늦었느냐고 물으면 남편은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늦었다는 핑계를 대었고 친정에는 도박자가 없었으므로 나는 그 말을 믿게 되었다. 당시 시부모님들은 남편에 대해서 아무런 말씀도 해주시지를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남편의 도박을 알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서도 첫아이를 낳으며 시부모님과 3년을 살았다.

그후 시부모님이 Down Payment를 도와주셔서 우리 부부는 Town House를 사서 분가하였고 둘째 딸을 생산했다. 남편은 Sales Job으로 그 많은 여유시간을 Go Stop으로 소일해서 빛과 생활고는 계속 되었다. 생각다 못해서 나는 미싱 3대로 집에서 바느질을 시작했다. 내가 운전을 할 수 없으므로 남편이 일감을 날라다 주며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니 생활이 점차 안정되어 갔다. 그러나 남편은 도박을 계속하였고 빚을 지게 되면 사정을 해와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에 빚을 갚아 주다보니 살만해 지면 빚을 갚아야 하고 또 빚을 지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1987년에 들어서면서 나는 너무 많이 지쳐있었고 오갈 데도 없고 안 살 생각에 이혼 할 마음을 먹었다. 서울에 출장을 다녀온 남편은 또다시 잘못했다고 사정하였고 우리 부부는 그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에 다닌지 약 3개월 후에 남편은 또 도박을 하여 빚을 졌고 빚을 갚으면 내 자신의 마음도 편해지는 것 같아서 다시 갚아 주었다. 어느 때는 "너 이년아! 네 남편이 빚을 졌으면 네년이 빚을 갚아야하지 않느냐"는 협박전화도 받으며 살았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오히려 내 자신이 대범하고 담대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88년도에 회사공금 사용으로 해고된 후에 한동안 나의 바느질 일을 도와주며 함께 교회생활에 충실하며 은혜 받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때 남편은 결혼 전부터 술과 마약도 야간 했었다는 고백도 하였다. 남편은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신학공부와 금식기도도 하였으나 중독증의 유혹으로 자꾸 자빠지더니 점차 가족과 신앙을 멀리하였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도박이었다. 어느새 남편은 빚 때문에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목사님이 심방을 다녀가신 후에 남편은 교회에 다시 나아가기 시작하니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남편의 소재를 알고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서 1만불 빚을 이자까지 합쳐서 1000불 짜리 수표 11장을 미리 써주고 매월 1장씩 갚자니 생활은 처참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편의 성미를 돋구지 않으려고 조심하였으나 남편은 신학과정을 다니면서도 다시 도박에 손을 댔다. 목사님으로부터 아나 하임에 단도박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에게 권했으나 남편은 "미쳤느냐"고 했고 나 자신도 가족모임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었다.

남편의 도박생활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빚이 많아져서 1992년에는 살던 집을 처분한 5만 불로 빚을 갚고 월세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나는 이사간 집에서도 생계를 위해서 바느질은 계속해야만 했고 정식으로 좀더 크게 할 일이 생겨서 시부모님이 8,000불을 주셨으나 남편은 이 돈 마저 도박에 날려버렸다. 주위 사람들은 집을 판지 3년 안에 다시 사지 못하면 안된다는 말을 해서 이때부터 밤잠을 제대로 자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남편 모르게 따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2년만에 3만 불을 모아서 집을 계약했다. 그러나 이를 안 남편은 이제 곧 선교하러 나갈 것인데 집을 사는 것은 걸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댔으며 나 자신도 물질에 얽매이고 싶지 않고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어서 위약금을 물면서까지 집을 해약했다. 집을 다시 장만하지 못하게되니 한동안 마음이 허전하고 소망이 없어졌고 결국 남은 계약금 마저 도박으로 없어졌다.

좀더 크게 바느질일을 하기 위해서 1994년에 더 큰집으로 세를 들어간 어느 날 남편의 차를 뒤져보다 5천불을 발견하고 대판 싸운 일이 있다. 남편의 도박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일해봐도 항상 돈은 없었다. 한번은 남편의 거동이 심상치 않아서 일감을 주는 업체에서 내가 먼저 3천불을 받아왔다. 그 돈을 수중에 넣지 못한 남편은 아주 폭악하게 나왔다. 나는 남편이 하는 행위가 마귀의 짓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담대해졌고 내가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남편은 나의 의연함에 숙으러졌고 이제부터 돈을 벌어다 줄 테니 힘든 바느질일을 그만 하라고 해서 그 말을 믿고 재봉틀을 4천 5백 불에 팔았으나 2주도 못되어 그 돈을 또 날리고 우리 5섯 식구는 다시 살길이 막막해졌다.

이런 일이 있은 지 3개월 후에 나는 다시 바느질일을 시작했다. 남편은 돈이 떨어지고 빚을 지면 도박을 중단하고 올바로 살고싶은데 빚이 걱정된다고 사정하여 또 빚을 갚아주는 일이 연속되었다. 남편은 96년도에 다시 신학공부도하며 직장에 다녔으나 도박을 끊지 못했다. 97년도에 시누의 소개로 나는 처음으로 Korea Town에 있는 단도박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서로 아픔을 이야기하고 위로 받으며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좋았다. 모임에서 도박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과 가족의 아픔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이 연단을 통해서 인내를 키워주시고 소망을 주신다는 말씀과 낙심치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붙잡고 감사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으나 날이 갈수록 남편의 도박은 더욱 심해지고 아예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고 늘 여기 저기서 빚 독촉 전화가 왔다.

참다 못한 나는 98년에 남편보고 서로 떨어져 살자는 말을 하게 되었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남편은 1달 후에 가정이 필요하다는 말로 빌며 애원했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뇌리를 쳤고 남편의 본심으로 알게 되어 남편은 집으로 돌아 왔다. 그후도 남편은 인근의 기원에 드나들었다. 남편은 다시 빚 걱정을 해 왔다. 1달 후에 다시 2번째로 집을 나갔다. 얼마 후 다시 돌아왔다.

99년 7월에 3번째로 남편과 별거하게 되었다. 이 즈음에 나는 기독교방송에서 이 선교사의 도박 상담 내용을 들고 연락하여 12단계 회복모임에 참석하면서 "도박이 저렇게 무섭구나!"하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모임을 통해서 도박 중독자에게 끌려 다니면 가족들도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먼저 회복을 해야 나와 내 가족들이 건강해 지겠구나 그리고 남편도 나 자신이 먼저 변화 된 모습을 보고 뒤따라 변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회복모임을 인도하는 사람들은 의사, 나는 간호원, 남편은 환자이다. 이 선교사는 가족과 중독자를 그룹 별로 상담하고 후반에는 가족과 중독자 모두 함께 참석해서 12단계 회복내용을 같이 한다.

여기서 나는 많은 중독자들의 솔직한 심정들을 듣고 그들의 회복과 재발 모습들을 보며 남편의 병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또 가족들과의 심도 깊은 이야기는 도박자의 마음이 어떨 때 다시 좌절하는 가를 알게되며 그럴 때는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를 해야하는지를 여러 참석자들의 체험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매주 다른 회복내용들이 제공되고 참석자들의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회복모임 날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지난 19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니 하나님은 예수님을 전혀 몰랐던 저를 미국으로 오게 하셔서 환난과 고통을 통해서 믿음을 심어주신 것을 발견하고 새삼 감사할 뿐이다. 그간 나는 정말 인간을 의지하면서 너무 많은 아픔들을 겪어야만 했다.

주님! 인간만을 바라보았던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습니다. 지난 19년간의 그 처참한 가운데에서도 3 자녀를 훌륭히 그리고 올바로 성장시켜주시고 남편을 아직도 이 세상 사람으로 지켜주시고 세상 온갖 고통을 겪게 하시면서 제가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울며 기도생활을 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언젠가는 남편도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알고 이 회복모임에 다시 나오며 주님을 위해서 일할 것을 믿습니다.

지금도 두려움과 해로운 수치심으로 자신과 가족들을 회복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많은 중독자 가족 여러분들에게 제 자신이 오랫동안 중독증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빚을 갚아주며 인간적인 방법으로만 남편의 도박을 막아 보려고 온갖 노력을 해보았지만 결국은 남편의 도박생활을 더 키워준 저의 잘못을 이 회복모임을 통해서 알게 하여 주셨고 오늘 제가 겪은 체험들을 밝힐 수 있도록 저의 마음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그 크신 뜻을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안 저의 마음은 평온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감사드립니다.

2001년 2월 11일
- 미국 LA Mrs. Kim -

3. 회복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


남편을 만나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어언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즐거웠던 기억도 많지만 지옥 같았던 지난 시간들이 더 머리 속을 스쳐가며 그때 고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리는 1986년에 주위 분들의 중매로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고 그해 겨울에 시댁식구들이 계신 하와이에서 가슴 부푼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 생활을 잘 적응하지 못하는 저와 다섯 분의 누님들 속에서만 생활하여 매사에 수동적인 남편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들로 서로 다투는 시간이 많아 졌다.

결혼한지 1년 후에 남편은 시집식구들의 간섭에 늘 힘들어하는 나를 배려해서인지 Hawaii 에서 멀리 떨어진 Los Angeles로 이사를 했다. 그 후 나는 여러 가지 궂은 일을 해야 했고 남편도 힘든 막노동 일을 해야만 했다. 우리들이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는 가운데도 하나님은 큰 아이를 우리 가정에 주시는 축복을 내려 주셨다. 그러나 남편은 날이 갈수록 하는 일을 힘들어했고 누나들의 보호 속에서만 살아온 그에게 힘든 노동은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나 역시 막내로 곱게만 자라서 아이를 키우는 일과 가난과 싸우자니 자연 짜증나는 날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은 1992년에 기분전환 겸 라스베가스에 놀러 갔는데 그 곳에서 돈을 따서 모처럼 즐겁고 오붓한 시간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때 처음 돈을 따서 즐거워했던 도박이 우리 가정에 그후 8년이란 고통의 시간이 될지는 미처 몰랐었다. 큰애가 1살이 되기도 전에 도박으로 외박을 했고 다음 날 들어온 남편은 Credit Card로 $7,000 불을 잃었다며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남편의 안색은 근심과 어둠이 가득한 하루하루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남편은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기 위해서 매일 힘든 중노동을 계속하자니 체력의 한계 때문에 자신이 없었고 또 그 당시 LA 근교에 큰 지진으로 그가 하는 일이 더욱 바빠져 피로가 겹쳤던 점들이 그를 더욱 중독증에 빠지게 한 것 같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후부터 남편의 중독증은 더욱 노골적으로 심해져 갔다. 어쩌다 도박 중단을 애원하면 그는 밤을 세워서라도 자신의 비즈니스에 관련된 일은 다하면서 도박을 했기에 언제나 당당했고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만은 침해하지 말라고 화를 내곤 하였다. 남편은 가끔씩 돈을 따면 고급식당이나 금반지와 여러 선물들로 나에게 기쁨을 주려고 하였고 나는 그저 저러다가 그만 두겠지 하는 생각으로 도박을 별로 심각하지 않게 받아드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남편은 점점 일하기를 싫어했고 도박 때문에 손님들과의 약속도 어기는 일이 빈번해져 갔다. 계속된 도박으로 생활이 아주 어려워지자 남편은 아예 파산을 할 계획으로 여기 저기에 돈을 Credit Card로만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는 것이 점점 더 불안하고 견딜 수가 없어서 결국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오게 되었고 친정의 도움으로 조그만 식당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조그만 아파트에 월세를 내며 잠을 자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아빠와 떨어져 사는 애들은 부모한테 받은 상처로 늘 침울하게 지내야했고 어쩌다 그림을 그려도 검정 색을 많이 사용하여 이 엄마의 마음을 또 한번 아프게 했다.

이렇게 도박 때문에 온 가족이 별거까지 하는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당시 남편이나 나나 도박을 병으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후일 허점으로 들어 날 줄은 몰랐다. 얼마 후 남편이 사죄를 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에 다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로 그를 받아 주었고 우리 부부는 함께 장사를 하며 남편에게 시간의 여유를 주지 않고 돈 관리를 내가 한 탓인지 3년 동안 별로 큰 일 없이 지냈다.

그간 아무 일없이 지내온 그를 믿게 된데다가 아들이 겨울방학을 한 틈을 타서 나는 작년에 잠시 한국을 다녀 왔다. 돌아와 보니 남편은 내가 한국으로 간 다음날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재발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10개월 후에 가게가 팔려서 남편은 통신설비관계 직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공사하러 간다고 다른 주로 떠난 그 다음날 그는 다시 재발하였고 객지에서 도박으로 돈이 다 떨어져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면서도 방황과 사탄의 늪에 빠져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중독자가 재발되면 그 배우자의 반응도 재발한다는 말과 같이 남편의 거듭되는 재발은 나를 다시 지난날의 불안과 고통 속으로 몰아 넣어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그저 참담하기만 했다. 나는 지치고 무거운 마음으로 2월 18일 주일날 교회를 다녀온 후에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안내광고 한 구석에서 "인터넷 도박/알코올/마약 회복 Website 주소"를 발견하고 바로 인터넷을 열어 회복내용을 보기 시작했다.

회복내용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도박은 병이고 남편의 병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 동안 그를 더욱 병들게 감시하고 몰아세우기만 했던 나의 어리석음과 무지 그리고 미안함과 기쁨이 가득 찬 희망 등이 뒤범벅되어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고 남편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나는 전화로 남편에게 나의 이런 마음을 전했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그 주에 우리 부부는 차를 타고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서 2월 23일 금요일 저녁 회복모임에 처음 참석하였다. 정말 체계적인 치료과정은 나를 놀라게 했고 무척 멀지만 회복모임 참석만이 우리의 생과 죽음이라는 심정으로 모임에 계속 다니고 있다. 늘 회복모임 준비로 수고하시는 이 선교사에게 감사드리며 모임에서 서로 교제하며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도록 자신의 일 인양 걱정하고 위로해 주는 회복모임 참석 동료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아직은 회복초기 단계이지만 나 또한 치료받아야 할 부분이 많이 있음을 깨달았고 특히 나 자신의 병을 더욱 빨리 치료하기 위해서는 봉사 사역을 감당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요사이는 주위에 남편의 도박으로 고생하시는 한 분을 모시고 함께 모임에 참석하는데 그 분을 통해서 지난날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언젠가는 그 분의 남편 분도 이 회복선교센터에 나오시리라고 믿으며 빨리 회복되시어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 되시기를 기원한다.

하나님! 처참한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저의 가정에 믿음을 심어 주셨고 주일날 회복모임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2001년 4월 5일
- LA 거주 Mrs. 박 -

4. 회복야유회와 도박회복모임 참관기


저도 갬블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중독 아닌 중독에 걸려 있었으므로, 오늘 처형의 회복 100일은 뜻 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누님이 회복 100일을 맞이한다고 해서 아침에 제 마음을 여러분께 전달하고자 몇 자 적어 봤습니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이 신선한 느낌, 어느 그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다. 이른 아침 새벽녘에 눈을 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으로 눈을 뜨면 일터로 바로 나가는 나에게 오늘도 어김없이 눈을 뜨는 순간 빨리 일터로 나가서 오늘에 나의 평화스러운 삶을 만들어준 고객들에게 어떤 감동과 서비스를 줄 수 있을까 하는 설렘과 준비가 내 마을을 설레게 만들었다.

주저주저 옷을 꾸려 입는 순간 “아, 오늘은 나의 쉬는 날이구나!” 생각이 들도 그러는 순간 스타박스에 가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가려고 하는데 Sky가 일어났다. “아빠, 배고파!” 나는 갑자기 너무 내 욕심만 챙기는 것이 아닌가 해서, 서둘러 밥을 차려 먹이고 Wife에게 미안하다고 애기하고 집을 나섰다.

한해 한해 지날수록 타국인 여기가 내 고향처럼 포근하고 따듯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스타박스를 향해 가는 도중 푸른 잔디가 깔려 있는 공원을 보게 되었고 여기가 왠지 나의 마음을 정화시키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타박스에서 커피 1잔을 사서 공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처형의 100일 날이다. 참으로 뜻 깊고 감격스러운 날이다. 지난 몇 년간의 혼란스럽고도 힘든 기억이 생각난다. 참으로 가족으로서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처형이 카지노를 가서 문제가 생기면 “왜 인생을 저렇게 살까? 왜 그 천사 같은 사람이 저렇게 변했을까?” 항상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정녕 우리가 도와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인사가 너무 늦었지만 너무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지만 처형이 대견스럽고 아름답다. 무엇보다도 우리처형을 이렇게 옛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 선교사님, 우리 형, 그리고 도와주신 모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10년 전 미국에 도착했을 때 가까운 사촌 분들이 저희 부부를 처음 미국 구경시켜준다고 데려간 데가 카지노 이었다. Wife는 휴가철 정도만 라스베이거스에서 카지노를 즐겼고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카지노에 빠져들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돈을 땄다.

처음 이민생활에 생활비도 여유치 않은 나에게는 그곳에서 몇 백 불을 딴다는 것이 아주 큰돈이었고 하나의 희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카지노에 가지고, 거는 금액도 늘어나고 햇수도 늘어나게 되었다.

몇 달 전 형이 공원에서 우리모임 Party가 있는데 같이 가지고 권유했을 때에 내가 왜 거기를 가야돼나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사항이 벌어졌다. 모임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너무나 순수하고 평범한 사람들 이었고, 그 분들로 인한 가슴앓이를 화는 가족 분들의 모습, 그리고 아주 연세가 많으신 선교사님이 이분들을 좋은 길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 진심어리 열성적인 모습을 보고 나는 한순간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아, 이거다!” 내가 왜 내 인생을 이렇게 살고 있을까? 왜 무슨 이유와 목적으로 나의 발걸음은 거기로 향해야 하는 걸까? 내 자신이 참으로 내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심을 했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Wife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과거는 과거 일뿐 현재와 미래가 나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지금까지의 과거에 대해서는 애기하지 않겠어. 묻지도 말아달라고 했다.

이제부터 자기에게 월급날 “얼마를 갖다 주지 못하면 나는 카지노를 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는 거기에 또 가기위해 적립해 놓았던 돈을 다 Wife에게 주었다.

참 기분이 개운했다.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고 나온 기분 같았다. 그리고 Wife는 나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야 “고마워” 자기는 할 수 있고, 자기가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동안 짧았지만 왜 진작 이렇게 할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에게는 카지노에서 아무리 큰돈을 따도 그 돈이 어디서 생겼다고 Wife에게 애기도 할 수 없어서 결국 가까운 지인들과 유흥비로 탕진하지 않았던가!

마음을 다 털어놓고 보니 나에게는 그런 돈보다는 내 가족들의 화목과 행복이 더 큰 기쁨이고 재산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내 주머니에 단 1불이 없어도 배부르고 행복하다. 그리고 요즘은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좋다.

요즘에는 카지노에서 느끼는 즐거움 쾌락보다 더 큰 즐거움을 찾는데 노력한다. 거기를 가지 않음으로서 직장에 더 충실하게 되었고 분노심도 많이 줄어들어 남에게 배려할 수 있는 마음도 많이 생겼다.

직장동료들과도 때마다 카지노에 갔었다. 동료들은 이제 20대들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인생 선배로서 동료들을 이끌고 카지노로 갔던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고 부끄럽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이 나는 데로 동료들에게 도박의 문제점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해 준다. 동료 중 한 명은 부모님이 자주 카지노에 가신다고 한다. 문제는 가실적마다 많은 돈을 따오신다고 한다. 나는 동료에게 부모님의 카지노 출입을 절제시키고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본인이 만들어 보라고 권유했다.

동료들도 내가 카지노를 안감으로써 자동으로 가지 않았다. 참으로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인생의 반은 성공했다!”고 말이다. 이제 거기에 쏟아 부은 정성을 너희가 정녕하고 싶은 일에 투자를 하고 정성을 쏟아 부으라고 말이다.

예전에는 카지노에서 돈을 따면 동료들에게 술도 사주고 밥도 많이 사주고 했는데. 지금은 Wife에게 돈을 다주고 나니 돈이 없어서, 매일 아침에 마켓에서 신선한 과일을 사서 동료들에게 나눠준다.

“내가 돈이 많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것은 이정도 밖에 안 된다. 그냥 너희 건강을 챙기고 싶다”고 말했다.

동료들은 너무나 감동이라고 애기했고 그 무엇보다도 값어치 있어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직장내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동료들도 잘 싸우지 않고 서로 이해해서 고객들에게도 많이 부드러워 졌다.

나는 이 회복모임에 이제 4번째 참석했지만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도 빨리 중독문제에서 치유되시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모두 최선을 다하면 좋겠습니다.

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랑 합니다.

2011년 11월 15일

- LA 인근에 사는 Mr.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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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가족 회복 사연들


절망에서 희망의 문턱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

우리는 1992년 시고모 님의 중매로 결혼하게 되었다. 전화와 편지로 2 개월 간 교제하다가 남편이 한국으로 나와서 처음 만나고 그 다음날 우리는 결혼도 하기 전에 결혼 신고부터 먼저 했어야 했다. 미국 바자가 빨리 나와야 한다기에 모험을 한 셈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32 살 나이에 너무 겁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원래 나는 성격상 일을 잘 저지르는 편이 옅다. 부모님의 반대와 특히 먼 곳으로 시집보내야하는 섭섭한 마음뿐이신 아버님은 어제 밤에 만난 남자가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 혼인 신고를 해야 한다니 잘 납득이 가지 않으셨고 못 마땅하게만 여기셨다. 그러나 남편의 어른을 모시는 깍듯한 예절과 언행이 조금은 아버님을 안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당시 무엇을 믿고 결혼을 그렇게 강행하였는지 모른다. 엄청난 모험 뒤에는 엄청난 믿음이 있었기에 그 엄청난 일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남편은 그 당시 어느 교회의 회계집사였고 나는 교회 고등부 교사였다. 부모님이 권사와 장로님 이셨기에 어려서부터 교회를 내 집같이 드나들었고 열심히 교회 일을 하게 되었지만 별 어려움은 없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 금식기도와 결혼 특별기도로 하나님께서 꿈에 보여주신 것은 남편과 가족들의 성격과 모습들이었다. 시집와서 만나 뵈니 꿈에 본 분들과 똑 같았다. 남편이 회계집사였기에 신앙이 돈독한 줄 알았다. 남편은 하나님의 은혜로 술과 담배를 끊고 싶다고 했고 좋은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도 했다.

나와 결혼을 할 당시 이미 남편은 이혼한지 2년이 되었고 그런 것이 나에게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부모님과 의논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결혼을 반대하시는데 이혼 남이라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나에게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고 생각하시다가 내가 아니면 이 일을 해낼 수 없으니 나를 이 가정에 보내신 것 같다.

드디어 결혼한 지 3개월만에 비자가 나왔고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왔다. 꿈같은 신혼생활은 남편이 미리 마련해둔 콘도미니엄에서 시작되었으나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힘들고 외로운 미국생활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당시 컴퓨터 관련 미국회사에 근무하였기 때문에 퇴근 시간이 일정 했다. 나는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저녁상을 매일 매일 예쁘게 준비해 놓아도 허기져서 집에 돌아온 남편은 배가 고프지 않다며 나의 정성을 별로 탐탁하지 않게 여겼고 대신 들고 온 술을 마셨다. 나는 그런 남편의 태도에 기분이 상했고 오직 남편만 바라보던 나의 마음은 점점 외롭고 어두워 갔다.

남편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매일 술을 마셨으며 취하면 울기도 했다. 왜 우는지 영문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남편의 모습이 불쌍하지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한 달에 2번 정도 술집에 가던 것이 일주일에 1번 3일에 1번으로 점점 그 횟수가 잦아 졌다. 나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며 마음에도 없는 이혼을 하자고 협박도 해 보았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다시는 안 그러고 열심히 살겠노라고 빌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작심 3일이다.

이제는 내가 살자고 하고 오히려 남편은 이혼하자는 협박 비슷한 말을 자주 한다. 시부모님도 괜한 집 딸자식 데려다가 고생시킨다면서 결혼시키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더 심해졌고 자식 낳으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그 모양 그 꼴이라면서 한숨과 고독한 세월을 보내신다.

1993년 그때 나는 큰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태교를 잘 해보려고 애썼다. 연애기간과 사랑 없이 결혼한 우리들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아무리 노력을 해 보아도 술 때문에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었다. 남편은 술을 마셔야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고 어쩌다 부모님 집에 가자면 밥을 먹으면 술을 마실 수 없다며 가지 않았고 교회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가족과 함께 놀러가지도 않았고 그 어느 것도 술 때문에 집에서 혼자 지내며 책보며 취하면 잠자고 자다가 눈뜨면 다시 마시고 술을 마시다가 배고프면 먹고 그러기를 8년째하고 있지만 남편이 술을 마신 지는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1995년 우리는 더 큰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유는 잔디 깎고 청소하고 돈이 부족하면 술집도 덜 가고 집에서 할 일이 있으니 술을 덜 마시지 않겠는가 하는 짧은 생각에 우리는 무리하면서 까지 이사를 했다. 정말 처음 몇 달은 술집도 뜸하게 가고 좋아했다. 그러나 이것도 도루묵이 되어 버렸다. 이사한지 3달만에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서 경찰서에 갇히게 되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차만 폐차되었다. 남편은 이 사고로 1년 반 동안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어서 서투른 내가 대신 운전을 해야만 했다.

남편은 음주사고 때문에 법원 명령으로 "단주 모임(AA)"에 참석하게 되면서 다소 마음의 변화가 와서 술을 끊어 보려고도 시도했지만 결국 10일을 넘기지 못했다. 좌절감에 빠진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날마다 밖으로 다닐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남편을 도와 주어야할지 몰라서 마음만 아팠다. 술을 다시 시작한 남편은 전보다 더 많이 마시는 것 같았고 본인도 자포자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삶의 회의를 느끼며 왜 살아야 되는지 죽고 싶어했고 점차 염세주의에 빠져 들어갔다.

나는 방황했고 나의 삶이 저주스러웠고 답답했고 살길이 없는 인생을 끝내고만 싶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불쌍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데 선물을 팽개치다니...... 그럴수록 나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 졌다. 그 즈음 기독교 방송에서 우연히 이 선교사님의 중독증 회복에 대한 방송을 들었다. 귀가 번쩍 뜨였다. 내가 방송에서 들은 대로 점검해보니 내 남편은 중독자인 것 같았다.

이 선교사님을 만나기 위해서 수차 전화로 약속을 해 놓고도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5 번이나 약속을 어기고 거의 3-4개월이 지나서야 찾아갔다. 이렇게 차일피일한 이유는 그동안 많은 상담가들과 이야기를 했었는데도 별 도움이 없었고 자주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들었기에 만나 볼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내 삶이 하루아침에 변화만 된다면 하는 엉뚱한 상상만 하였다.

약속을 5 번이나 번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화 할 때마다 친절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주려는 이 선교사님의 친절함에 감동하여 어렵게 친구와 함께 가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3번이나 고속도로를 갈아타는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실오라기라도 잡아 보려는 심정으로 다시 찾아갔다.

운전이 미숙하여 다리에 쥐가 나 기도하고 너무 긴장하여 온 몸이 아프기도 했다. 그러나 꾸준히 다니며 그곳에서 12단계 회복 내용을 배우게 되었다.

가족인 내가 먼저 회복해야 된다는 것을 배우며 남편을 환자로 보게 되었다. 이해 못하던 것도 이해하게 되었고 어떻게 할 줄 몰라 어려울 땐 이 선교사님께 전화를 걸러서 도움을 받았다. 우선 마음에 답답함을 털어놓으니 한결 가볍고 왜 남편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고 중독증이 그렇게 무섭고 가족의 따듯한 사랑과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아직도 힘들고 어렵지만 혼자 고민하며 혼자 해결하려고 할 때는 지도 없이 길을 찾아가는 것 같더니 항상 친절하게 도와주시는 선교사님이 계시니 한결 쉽고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지금은 남편을 될 수 있으면 편안하게 해 드리며 세워주며 가정이 편안한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며 가능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남편도 이젠 술집에 가지 않는다. 본인을 이해 해주고 사랑해 주는 아내와 자녀가 있으니 술집에 갈 이유가 전혀 없다고 남편은 말한다. 나만 없으면 또한 있을 때도 나 몰래 나갔던 남편이 이해하고 믿어주니 지금은 내가 집에 있으나 없으나 술집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도 술을 완전히 끊고 싶고 변화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금단현상을 두려워한다. 나는 언제고 남편이 회복모임에 스스로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그곳에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편이 취하지 않았을 그 때의 선한 모습과 자상한 모습을 가슴에 담고 그런 남편의 모습이 회복될 수 있도록 매일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 이 선교사님을 통해서 신학 공부도 마치고 나와 같이 고통을 당하는 분들을 위하여 위로해주며 도움을 주고 싶다.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문제를 보지말고 여호와만 붙잡으세요!
우리 가정과 우리 인생의 장막을 칠 수 있게 하신 하나님 파랑새를 잡으러 가지 않도록 주 여호와가 우리의 행복임을 고백하여!

다 타다 남은 통나무처럼 시커먼 연기만 나는 내 남편이 하나님을 만나 뵙는 계기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행복을 받고,
저 절망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

나라고 하는 존재는 다 타더라도 여호와의 가스가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계속 태워 주시기를 ............

이 선교사님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이렇게 제가 회복하여 우리 가정도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품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도록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2001년 5월 30일
- LA에 사는 Mrs. 김 -

마약가족 회복 사연들


주님께서 도와 주시고 힘 주시기를...

이 선교사님께,

지난 토요일 밤, 저희 부부를 위해서 여러 시간 좋은 도움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난감하고 괴로운 시간이 없을 겁니다.

매일 머리를 쓰고 궁리하며 걱정하고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이 선교사님!
돈 버는 일도 아니고, 자기의 시간을 바쳐서~
어려운 사람을 돕느라 애쓰시는 모습을 뵈니...
이 세상 사람들이 안보는 곳에서 뜻 밖에 수고를 감당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깨달으니 감격이 됩니다!

선교사님 하시는 일들을 주님께서 도와주시고 힘을 주셔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되고 좋은 열매를 거두실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2001년 11월 27일 새벽에
- LA Mrs. Kim 올림-

성중독 문제 가족 회복사연들


저도 "사이버 Sex 중독 위험"을 읽고 곰감이 갔습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랍니다.

몇 달 전부터 남편이 채팅을 많이 하는 것 같았는데 하루는 현주라는 이름의 여자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에게 들켰거든요. 남편은 대수롭지 않은 여자라며 이제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두세 달이 지나 컴퓨터가 고장이 나면서 제 메일 박스에 남편의 메일이 떴어요. 놀라운 건 그 후에 그 여자가 캐나다까지 찾아와 둘이 만났더군요. 그 여자는 남편을 가르켜 너는 나의 나무라고 표현하며 우리 두 아이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사랑하는 감정을 거의 매일 보내왔더군요.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이나 메일을 보냈더군요. 사진까지 보냈는데 사십 중반 정도의 평범한 아줌마였어요.

남편과 솔직히 얘기를 나누었는데 일이 힘들어 취미 삼아 채팅을 즐기다 알게 되었대요. 장난으로 달콤한 말 한두 마디 했는데 정말 캐나다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대요. 그리고 만나보니 생각한 것보다 너무 실망스러워 끝내려고 했다며 실은 그 여자를 실제로 만나며 저에게 죄책감을 많이 느꼈대요. 이일을 계기로 모든 메일주소를 없애고 요즘은 컴퓨터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이버로 끝나는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채팅! 가정파괴까지 가기 직전이었어요. 혹 컴퓨터가 고장나지 않아서 제가 계속 모르고 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그 여자가 더 예쁘고 매력적이었다면..... 정말 생각하기 싫으네요.

의외로 내 가까이에 사이버 중독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놀라웠습니다. 여자도 그렇지만 남자도 중독이 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야후 게시판 “여성의 사이버 Sex 중독 위험” 토론주제에 올라왔던 25번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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