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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 편지
l 가족 편지 l 자녀 편지 l 회복자료 편지 l 선교지 편지 l 일반/기관 편지

중독자 회복편지란 - 중독별

회복증거는 나의 회복을 더 성장시켜 주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나침반과 같은 회복안내가 됩니다.


이는 바로 “12단계의 마지막 단계”를 실제로 이행하는 일입니다!

[회복 단계들의 결과로 영적각성을 깨달았으므로,
다른 중독자와 가족들에게 이 회복 원칙을 전하도록 노력하며,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 모든 원칙을 실천하도록 노력합니다]


-이해왕 선교사-

세미나 - 회복 간증 내용

중독가정의 삶과 행복

세미나(Seminar)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과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이해왕 선교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과거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물질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흘러간 세월이었고, 가정을 등한시 하면서 나의 쾌락만을 쫒아서 방황했던 저는 치유과정을 통해서 도박중독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이제는 내 마음을 짓누르며 무기력하고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할 수 없었던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오직 아내의 지혜와 헌신, 사랑이었고 남편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저에게 신뢰, 희망, 용기를 북돋아 주었기에 밑거름이 되어 여러분께 감히 간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니, 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감개무량 한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무거운 짐을 던지고 제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서 평온한 마음과 행복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천만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도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신세가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듯이 “家和萬事成” 다섯 글자를 머리와 가슴에 깊이 새기면서 정말 화목한 가정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 저희 부부는 하루, 한주를 후회 없이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낙천적이고 쾌활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특히 Sports를 줄기며 어려운 이민생활을 극복하면서 평범한 가정생활을 해 왔습니다.

어느 날 밤 아는 친구가 자기 집에 와서 고스톱이나 치고 놀자고 하기에 세 사람이 모여 놀고 난후 Casino에 간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간 것이 시초가 되어 Casino에 발목이 잡힌바 되었습니다.

Play rule도 모르는 저에게 Black Jack을 가르쳐 주면서 하다 보니 초보자니까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본전 생각도 나고, 가고 싶은 충동도 있고 해서 일주일에 한번, 혹은 두 번 다니다보니 Small business에 정신을 두지 않고 마음은 꿩 밭에 있었으니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고 다짐을 해봐도 작심삼일 이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Casino에 들락날락 했으니 아내가 모를리 없었습니다. 여자들의 감각은 특별하니까 거짓말을 할 수 없어 결국 신인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아내와의 대화가 줄고 얼굴을 붉히면서 싸우기도 많이 했습니다.

한번은 제 얼굴을 거울에 비쳐보니 핏기가 없고 찌그러진 얼굴이었으며, 아내의 평온한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고, 대화가 없는 어두운 분위기 이었습니다.

아내의 심적 고통은 나보다 더 했을 겁니다. 그런 중에서도 아내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많은 지혜를 짜서 저를 설득시키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습니다. 돈은 돌고 돌며 있다가도 없는 것이니 돈에 집착 말고 수렁에서 빠져나와 제 정신으로 Business에 더 신경 쓰고 열심히 하면 빚도 갚을 수 있으니 다 잊어버리면 자기도 도와줄 테니 Casino에 가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아내가 부르는 대로 쓰라고 해서 썼습니다.

서약서에는 Casino에 가지 않겠다는 것과 아들에게 알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약서를 쓰기 전에도 아들에게만은 알리지 말라고 수없이 말했습니다. 곱게 자란 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너무나 큰 상처가 될 테니 제발 아들에게 만은 절대 안 된다. 후에 내가 이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 알려라. 그것만은 지켜달라는 간청을 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얼굴인데 어찌 추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느냐. 알리면 모든 게 끝장이다.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알리지 말고 당신이 보기에 내가 끊을 수 있다고 인정했을 때 그때에나 알려라. 하는 약속을 했습니다.

아내는 저를 믿고서 Credit 카드빚도 갚아주고 물심양면으로 저를 도와주어서 저도 아내의 심적 고통이 나보다 몇 십 배 커 검게 타들어간 아내의 마음을 되찾아주기 위해 전보다 더 아내에게 잘해주고 있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들에게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서약서의 말 그대로 아빠가 Casino에 다녔었고 지금은 Casino에 다니지 않는다고 했더니, OK 라고 응답해 줬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들이 용서해 주었으니 하늘을 훨훨 날아가고 싶고 막혔던 숨통이 뚫리는 것 같아 울기도 했습니다.

2007년 6월 1일에 처음 회복모임에 왔으니 만 2년이 됩니다. 회복모임이 있는 금요일이면 어떤 약속도 거절하고 금요일이 기다려지면서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아들의 용서에 용기가 솟아 2007년 12월에 이곳에 아들과 같이 와서 아빠와 엄마가 회복모임에 참석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흡족하게 보고 New York으로 돌아갔습니다.

2008년 12월에 공항에 아들을 Pick up 하러 마중 나가갔더니 첫인사가 요즘 학교 잘 다니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잘 다닌다고 하니까 그대로 OK 했습니다. 아내와 아들로부터 용서를 받았고 이곳 회복모임에서 희망을 찾았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다시는 지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고, 저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도박중독자들이 걷고 있는 지옥에서 벗어나 해 맑은 태양을 바라보며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후원자 역할을 잘해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하나뿐인 아들로부터 용서받고 사랑받았으니 그보다 더 값진 행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들과의 약속을 꼭 지키기 위해서도 Casino에 가고 싶을 때에는 아들과 약속한 것과 서약서에 제가 써놓은 아내와의 약속을 상기하면서 꼭 이겨낼 것입니다. 아내에게 써준 서약서와 오늘 간증한 이 글을 잘 보관해서 훗날 꺼내 볼 것입니다.

이제는 여기에 오신 분들의 남편이나 주위 분들이 도박에 빠져서 해어 나오지 못한 분들의 치유를 위해서 저의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 의견이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중독자들의 개성에 맞는 방법을 취사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이해왕 선교사의 오랜 치유 Step을 저도 공부했기에 선교사님의 교육을 통해서 저도 회복의 길로 걷고 있습니다.

남편의 가장 절친한 친구나 주위에 가장 친한 분과 의견을 나누고 도움을 청할 수도 있지만, 첫째가 아내의 역할이 지름길이며 치유의 최우선입니다. 순간의 유혹에 빠져서 도박에 심취되어 있는 남편에게 아내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윽박지르고 얼굴을 붉히면서 대화를 나눈다면 남편에게 나쁜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아내 분들은 감정을 억누르시고 분위기가 좋은 시간에 집에서 차를 나누면서 밝은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때 술은 금물입니다. 술을 마시면 맑은 정신이 사라집니다. 남편은 직설적이고 아내의 고충을 듣고 싶지 않고 그 말이 그 말인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인 아내 분들은 지혜롭고 슬기롭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면서 남편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편안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한민족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남편의 장점을 일깨워 주고 행복했던 시절을 나누며 고된 이민생활을 극복하여 가정의 평안과 화복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했던 시절을 연상하시면서 남편을 위로하고 이해하며 설득하고 용서해주어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나는 당신밖에 없어!” “당신도 나밖에 없지!” “나 믿지!” “나도 당신 믿어!” 해야 좋습니다.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허심 탄해하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남편 자신도 모르게 “가정, 아내, 자식” 생각이 나서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고 아내를 이해해서 나 때문에 고생이 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백지장도 맞잡으면 가볍다는데 “나는 당신을 도와주고 당신은 나를 도와주면 고통도 빨리 없어지고 행복했던 옛날로 돌아가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어” 하며, 확신을 심어주면서 대화를 나누면 지혜로운 아내로부터 회복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도박에서 손을 뗄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가져다주어서 “모두가 내 잘못이구나!” 생각하며 결단을 내릴 때 주저 없이 부부가 함께 선교사님이 진행하는 회복모임에 참석해서 교육을 받는다면 꼭 회복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듯이 전화위복으로 우리들의 대응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 놓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변화를 가져다주어 일석이조의 변화를 얻게 됩니다.

주님의 은총이 가득한 이곳을 찾아 회복모임에 참석해서 기쁨과 희망을 나누며 치유되는 결과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이민생활에서 모든 역경을 이겨내며 피땀 흘려 일거 놓은 가정의 평화와 훌륭한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했던 과거를 깊이 통찰하면서 회복가정을 이룩하십시오.

부족한 점 양해하시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뵙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선교사님께 감사드리며 부디 저와 같이 회복에 성공하시어 알뜰살뜰하고 행복한 가정 이루시기를 기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5월 2일 (중독 예방과 가정의 역할 세미나에서...)

- 미국 LA 김창균 후원자 -

세미나 - 회복 간증 내용


새로운 삶을 위하여

저는 39살의 치유프로그램으로 다시금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치유중인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제가 지금까지 겪어왔으며, 누구도 저와 같은 실수를 겪을 수도 있으며, 지금도 아직 도박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해서 고통스러운 삶과 가족과 가까운 분들에게 고통의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에게 제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얘기를 통해서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박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값비싼 오락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비슷한 계기로 도박을 접하게 되며,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고통과 절망을 느끼다가 추락하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여 자살, 범죄, 가정파탄 등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과 연관된 모든 인간관계와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쌓아놓은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무서운 병입니다.

▶ 도박의 시작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공부를 하고 항상 누구보다도 모든 것에서 잘한다는 말을 듣고 어린 시절과 학생시절을 보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누구한테 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1 등을 못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밤을 새고 공부해서 꼭 성취하는 성격이었습니다.

항상 남들보다 앞서가야 하고 무엇이든지 남들보다 나아야한다는 생각을 하며, 또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대학을 다니다 군대를 다녀온 후 더 나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유학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1 년여 간의 아르바이트와 유학준비 과정을 거쳐서 호주로 유학을 떠났고 열심히 공부도 해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까닭에 호주에서 여러 호텔들과 카지노리조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카지노를 알게 되었으며 일하는 과정에서 카지노대한 생리와 모든 게임들을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에서 큰 짐이 될것 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그 당시 호텔에서 일하면서 카지노에서 무너지고 병들어가는 교민들 유학생들을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몇 번은 차비가 없어서 집에 못가는 분들에게 호텔에서 지급하는 5달러 보상금을 준적도 있지만 사람들 90%가 그 돈을 가지고 다시 게임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저는 생활도박자였기 때문에 남들의 심각한 상황들이 절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단순히 그들이 운이 없어서 그리고 때로는 게임에 대해서 너무나 몰라서 돈을 잃고 간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 유학생들 중에는 학비까지 탕진하고 사채업사에게 여권을 빼앗기고 몸을 파는 학생들도 간간히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오렌지족들의 방탕한 유학생활과 도박의 한가운데 제가 서 있었습니다. 원래 숫자를 잘 기억하고 수학을 잘했던 저는 한번 나온 카드의 숫자와 그림들을 거의 기억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유학생들끼리의 10센트짜리 포커게임이 2주 만에 몇 만 불이 오고가는 큰 도박게임으로 발전을 했고 저는 그 게임에서 6만 불이라는 그 당시의 천문학적인 돈과 받을 도박 빚이 몇 만 불이 되는 대단한 채권자(?)가 되었지요. 저를 제외한 게임을 하던 모든 학생들은 한국에서 꽤 잘나가는 사람들의 자제들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돈은 우습게 생각 하고 계속적인 게임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게임을 계속하면 그 이들이 가진 모든 걸 딸 자신은 있었지만 공부를 하러온 유학생 이라는 생각을 다시하고 모든 빚을 탕감해주고 마지막 게임에서 딴 돈 2만 불을 그 자리에 놔두고 나와서 게임을 그만했습니다.

▶ 도박에 빠져들게 된 계기들

한국에 돌아온 후 외국출장이 잦은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외국에서의 각종박람회 프로젝트수행을 위해서 세계각지로 출장을 다니면서 저녁에 한가한 시간들이 생기면 주위의 카지노에서 조금씩 줄기면서 생활도박을 했습니다. 물론 딸 때도 있었고 잃었을 때도 있었지만, 제가 빠져들고 있다고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포커에 자신이 있었던 저는 서울의 사설카지노를 출입하면서 포커, 바둑이등 각종 도박을 상습적으로 하면서 많은 돈을 땄고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에 내국인 카지노가 설립되었고, 카지노 게임에 아직 서툰 다른 사람들보다는 내가 월등히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끔씩 용돈을 벌려고, 또 호텔에서 여가시간을 즐기려고 출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배팅금액은 조금씩 불어났고, 한번은 큰돈을 따서 이 생활을 청산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계속해서 게임에 빠져들었습니다. 불과 3년 만에 저는 가족만을 남기고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집, 직장, 친구,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있어야 제 자신까지....

▶ 절망감과 가족 주위사람들에게 상처를 준일들

그때의 절망감은 세상이 나만 빼고 남아 있다는 생각 그리고 자살, 범죄의 유혹들...
나의 진흙투성이 모습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감싸고 모든 상황들과 생각들이 절망으로만 치닫는 모습을 보고 차마 견뎌낼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칼을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길거리로 그리고 돈이 많아 보이는 한사람을 마냥 따라갔습니다.
그 사람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비틀거리면서 층수를 누르고, 저는 이미 그 사람의 뒤에 서 있었습니다.

그 이는 이미 인사불성이고 자신의 층수도 제대로 누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머릿속에는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이러면 안 된다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나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지옥에서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제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 이었습니다.
도박자의 가족이었지만, 범죄자의 가족으로는 내 자식들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안타느냐고 혀 꼬부라진 고함이 들리고 그제 서야 저는 정신을 차리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 자괴감과 위기를 빠져 나올려는 생각들

범죄의 유혹을 뿌리친 것은 정말 다행한 생각이었지만, 현실은 저를 그냥두지 않았고 나날이 저는 절망으로 빠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후 몇 년 도박을 끊고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위해서 밤늦게 일하고 노력한 결과 이제는 누구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박의 병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이제 몇 년의 시간을 거쳐서 다시 제 자신이 여유가 생기니깐 치켜드는 것이 도박 병 이었습니다.

가지 않겠다고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음에도 시간이 나면 도박장에 가서 않아 있는 제 모습을 바라보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 무슨 몹쓸 병도 이런 병이 있나! 제가 도박을 병으로 자각한 것은 이 무렵이었습니다.

가지 않겠다는 저의 의지로서 이겨낼 수가 없으며,
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주위에서는 항상 일 열심히 하고 성실히 살아가는 한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는 나를 남들에게 드러내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차마 누구에게도 말도 못했지만 아내하고만 이런 속 얘기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아내와 같이 가서 도박을 하고 오면 최소한 보이지 않는 빚은 생기지 않고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한동안은 아내를 대동하고 도박장을 다녀봤지만, 또 시간만 나면 혼자서 도박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라디오코리아에 출연하신 이해왕선교사님의 치유모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참가하여 현제 단도박 치유중에 있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찾던 치유센터가 저희 집에서 단 10분 거리에 있었으며,
평소에 알고 있던 지인께서도 모임에 참석하셔서 몇 년째 단도박 하고 계시다는 걸 알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아직 오랜 기간을 모임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몇 개월 동안의 치유모임을 통해서 저는 반드시 제가 치유될 수 있다는 확신과 또 제가 도움을 받은 만큼 어디에선가는 저와 같이 간절히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고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이제는 제가 과거에 도박을 하였으며, 도박을 통해 지옥을 경험하고, 또 치유모임을 통해서 새로이 태어난 새로운 인간으로서 제가 무언가를 해야 할 일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도박을 하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도 밝힐 수 없는 고통과 절망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것입니다.

그 분들에게 제가 겪었던 과거를 통해서 절망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전 어떠한 일이라도 감수하고 봉사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사명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봉사하면서 살 것입니다.

도박 병은 절대로 혼자서 치유할 수가 없으며, 혼자 자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자신과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과 상처들은 치유될 수가 없으며, 상황이 호전되면 발병하기 가장 쉬운 것이 도박 병 입니다.

제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도박을 하지 않기 위한 이유와 나중에라도 다시 도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자제 할 수 있는 힘과 그리고 나와 같은 전철을 다른 이들은 밞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우리 가족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선교사님과
회복모임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새로 태어난 저와 새로운 삶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2009년 2월 7일 (도박중독 예방 및 치유 세미나에서...)
미국 LA Mr. Kim


도박 회복사연


1. 어느 한 수감자의 편지

나는 중독 도박자로 현재 Centinela 주 형무소에서 2급살인 죄로 40년형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고 있으며 상소 중에 있다.

귀 단체를 돕고 싶으나 경제적으로 파산 된 상태여서 대신 나 자신의 참상을 알려서 단 한사람의 중독 도박자라도 자신은 물론 그들의 가족과 사회를 위해서 회복치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편지를 보낸다.

나의 중독증은 동료였던 한 사람을 살인하도록 까지 나를 만들었다. 나는 California의 어느 한 작은 도박장에서 Poker Dealer 로 근무했다. 도박위험이 많은 사람들이 도박장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은 별로 알려진 적이 없었다.

먼저 나는 도박장의 책임자와 딜러들이 매일 하는 일들을 지켜보아 왔다. 많은 딜러들도 중독 되어 있다. 11명의 딜러가 근무 했던 어느 한 도박장에서 나는 3명의 중독자 딜러 중에 한 명이었다. 다른 딜러 중 2 사람도 따는 단계(Winning Stage)에서 급격히 중독으로 치닫고 있어서 한 작은 도박장에 약 50%의 딜러들이 도박에 중독된 셈이었다. 나는 여태껏 까지 거의 150 여명의 딜러들과 근무해본 중에 약 35%의 딜러들이 도박에 중독된 것으로 본다.

나는 도박중독의 모든 진행단계를 거쳐서 막바지(Hit Bottom)에 처했으며 몇 번 자살기도를 했었다. 딸 때는 더욱 큰돈을 따려 고 계속 도박을 했고 항상 딴 돈은 물론 갖고있는 다른 돈과 주머니 동전까지 모두 잃는 것으로 도박을 끝내곤 했다.

내가 돈을 다 잃었을 때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했었던 것을 내가 또 했다"는 후회와 나쁜 감정에 빠지곤 했다. 한번 은 하루 급료와 팁 $475 모두를 잃은 적도 있었다.

사실 나 자신을 스스로 자해한 적도 있었다. 온몸에 피투성이가 되었고, 눈언저리는 시커멓게 멍이 들었고, 안경은 깨어져 버렸다. 약혼녀에게 내가 바보스런 짓을 했다고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나는 중독증을 숨기려고 "또 다른 거짓말"을 한 뒤 이었다.

약혼녀의 돈을 다 잃은 다음에 나는 다른 가족들에게 손을 벌렸다. 나는 Bank Statement와 Overdraft Notice를 감추고 은행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가로채서 처리하곤 했다. 아마 내가 거짓말을 잘한 만큼 Poker를 잘 했으면 벌써 백 만 장자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 밤에 모든 것이 머리에 떠올라서 괴로웠다. 나 자신이 너무 도박에 빠져 있었고, Child Support 비, 융자금, 돈을 빌려준 사람들, 그 많은 부채 등이 한꺼번에 걱정되었다. 나는 내가 근무하는 도박장 손님에게 .9mm 권총 한 자루를 팔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날 $300을 잃어서 기분이 상해 있었다. 약혼녀 은행 구좌에 거짓 Deposit을 시도했으나 잘 안 되었다. 겨우 $100 만 구할 수 있었다.

나는 내기 칩을 파는 사람(Marker)에게 권총을 $100에 팔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날 밤 $100과 다른 $40은 나의 운명을 망치 게 했다. 칩을 파는 자는 나를 배신했고 나를 외면했다. 그 다음 그는 나의 직장까지 위협했고 나는 궁지에 몰려서 감정 변화를 일으키고 말았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를 인식하기 이전에 그 사람은 이미 죽어 있었다. 나는 돈을 손에 가득 움켜쥐었다. 내가 Vegas에서 도박을 했다고 보도 되었다. 나는 어떻게 Mexico에 가려고 했는지 정말 기억이 없다. 나는 자살을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그 때 천 사를 보내주셔서 약혼녀를 떠오르게 해주어서 생명을 구했다.

나는 수감된 지난 16 개월 동안 단 한 번의 내기도 하지 않았지만 이는 "나 스스로의 자제력(Self Control)으로 안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박을 끊은 것이 아니다."

나는 도박을 그만 두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서 내 자신이 겁이 난다. 지금까지 말한 사연 때문에 도박을 더 못한 것이다. "나의 지나간 인생과 나의 처지를 보면서 당신 자신을 보기 바란다." 당신이 도박으로 인해서 나와 같은 처지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도박을 하기가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나에 대해서 더 알고 싶거나 내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연락 바란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마 우리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낙심하지 말고 계속 해서 도박을 끊으려고 힘쓰기 바라며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 바란다.(CCPG 기사, Vol 6, 1999 번역 제공)

2. 나의 회복 전환점 (Turning Point)

1991년 1월 어느 토요일 저녁에 여러 친구들과 약간의 술을 마신 다음에 함께 놀러 간 곳은 LA 근교에 있는 어느 한 카지노 였다.

평상시에는 그냥 LA 인근 여러 곳에 카지노가 있는가 보다하고 전혀 관심 밖이었고 전에 한두 번 호기심에 구경삼아 가본 기억은 있지만 도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같이 동행한 친구가 "팬 9" 이라는 게임으로 나를 안내해서 한번 해 보지 않겠느냐는 친구의 제의로 도박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이렇게 까지 끊기 힘들 것이라고는 그날 밤에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날 도박은 $5로 시작을 해서 잠깐 사이에 운수 좋게 $100 정도를 땄다. 그 후 아무런 노력 없이 쉽게 몇 십불 또는 몇백 불을 따기 시작하니 세상에 이렇게 쉽게 돈 버는 길이 있는데 왜 여태껏 힘들게 살아왔는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점점 돈에 대한 가치의식을 잃어가고 있었으며 배짱도 점점 두둑해지기 시작해서 도박에 거는 금액이 점점 커져만 갔다.

갑자기 돈 씀씀이가 커진 나의 행동을 아내가 의심을 할수록 나는 더욱 철저하게 숨기려고 하였으나 결국 도박을 시작한지 한 달이 못되어서 아내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돈을 딸 때에는 예전에 미쳐 느껴보지 못한 짜릿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으며 또 빨리 도박장에 가지 못하면 그 카지노가 어디론가 곧 없어져 버릴 것만 같은 불안한 환상마저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돈을 잃고 따는 일을 거듭하다가 그해 12월에 결국 나는 많은 돈을 잃었고 여기저기에서 빚까지 지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생활은 절망과 비애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으며 삶에 대한 회의마저 느끼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가족들 앞에서 다시는 카지노에 가지 않겠노라고 말해 놓고도 곧바로 무서운 속력으로 차를 몰아 미친 듯이 도박장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결과는 언제나 교과서 정답처럼 아내의 말대로 되어 버렸다. 그해 12월 31일 7살 먹은 막내아들과 새끼손가락을 걸며 입술을 깨물며 다시는 노름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4년 후에 다시 크게 재발하고 말았다.

그간 어느 정도 빚이 정리되고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니 지난날에 휴지조각처럼 맥없이 날려버린 나의 잃어버린 돈에 대한 미련이 차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시 시작한 도박이 정말 찰거머리처럼 내 인생에 달라붙어서 나뿐만 아니라 내 사랑하는 가족 모두의 피까지 철저하게 빨아 먹어가고 있었다.

도박행각을 반복하면서도 그 처절함에서 헤어 나와야 하겠다는 결심을 수없이 해 보았지만 왜 그렇게도 돈을 딸 때에 맛보는 그 희열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는지 모른다. 잃어버린 돈의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카지노를 못 가서 치미는 나의 분노는 마치 불타는 활화산 같아서 모든 비난의 화살을 내 가족과 아내에게 돌리고 있었다.

아내는 수많은 날을 나의 도박 때문에 한숨과 눈물로 지새워야 했다. 결국 견디다 못해서 작년 7월에 내가 신문을 보고 전화한 곳은 회복선교 센터 였다. 서너 번 회복모임에 참석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마음을 비우지 못해서 기회가 되면 다시 도박을 하려고 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한 회복모임에서 이 선교사는 중독 도박자의 고통은 도박 할 마음을 자극하여 도박을 하게하고 그 도박 결과로 야기된 고통은 또 다른 도박을 자극하게 된다는 차트를 내보이며 끝도 없는 도박심리의 사이클에 관한 강의를 했다. 이 회복 강의가 나의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때가 나의 “전환점(Turning Point)” 이었던 것 같다.

그 후 완전하게 도박에 대한 나의 마음을 비우다 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도박장에 가서 느꼈던 짜릿한 기분 못지않게 도박을 하지 않음으로 느끼는 평온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삶이 참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도박은 분명 무서운 병이며 자신의 의지로만은 고칠 수 없는 병이다. 도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회복선교센터의 도움으로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앞으로 나처럼 쓰라린 경험을 가진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봉사하며 살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대신한다.

2001년 1월 20일

- 미국 LA에서 Mr. 정 -

3. 도박과 나의 거짓말


나는 1996년부터 도박에 빠지기 시작했으며 6살 된 아들과 아내와 LA에서 살고 있다.

평소부터 내기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스포츠, 신변잡기 등 승부를 겨루는 게임은 물론 심지어는 내가하지 못하는 게임이라도 보고 즐기곤 하였다. 일이든 게임이든 한번 무엇엔가 빠지면 신물이 날 때까지 하다가 그것이 싫어지면 또 다른 것에 매달리는 중독적인 성격을 지녔다.

4 년 전 어느 날 아내와 심한 말다툼이 있은 2주 후에 나는 분풀이로 약 5천불을 가지고 라스베가스에 가서 3 일만에 갖고 간 돈을 다 잃고 말았다.

LA 인근에도 여러 카지노가 있는데 라스베가스를 다녀온 3개월 후쯤부터는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카지노가 눈에 들어왔고 라스베가스에서 날려버린 돈을 찾고 싶은 생각에 인근 카지노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오후에 프리스쿨에 다니는 아들을 데리러 가야하는데 도박 때문에 더러 늦거나 가지 못하게 되자 아내의 추궁이 심해져서 나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카지노에서 한참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나타나서 소란을 피울 때까지만 해도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단지 창피하다는 생각만 했다. 이때 나의 도박 사실은 가족모두에게 알려졌고 가족회의까지 열렸다. 누님은 그렇게 살 바에야 100 만 불짜리 생명보험을 들어 놓고 처자식을 위해서 아예 죽어버리라고 까지 말했다. 나는 가족들 앞에서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또 다른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간신히 모면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도 나는 카지노를 찾아갔고 귀가시간이 늦어질 때마다 아내는 그곳에 또 갔었느냐고 추궁하면 나는 무조건 거짓말로만 일관하였다.

나의 도박과 거짓말에 못 견딘 아내는 별거를 하게 되었고 아들은 내가 맡았다. 제일 괴로운 일은 아들이 엄마를 찾을 때였다. 나는 "엄마가 너무 아파서 치료받으러 한국에 갔고 다 나으면 집에 온다"고 아들에게까지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까지 떠난 이참에 도박이나 전적으로 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직장도 그만두고 거의 매일 카지노에 가서 살았다.

별거 6 개월 만에 아내는 아들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 왔으나 나는 여전히 카지노를 출입했고 견디다 못한 아내는 교회 목사님에게까지 나의 도박사실을 알리게 되었다. 목사님 소개로 아내는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이 선교사가 인도하는 한인 중독증회복 선교센터를 알게 되었다.

99년 11월 7일 아내의 손에 이끌려서 나는 마지못해서 도박 회복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모임에 다니면서도 "나는 도박에 중독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참석자들과 같이 그리 심각하지는 않다, 그냥 게임 그 자체를 즐기는 것뿐이다"라고 생각했으며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단지 성격이 예민한 아내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속이는 수단으로만 이용하였다.

공교롭게도 99년 5월에 생각지도 않았던 많은 돈을 받았고 이 돈으로 10배를 불려서 괜찮은 비즈니스를 해야 하겠다는 마음에 다시 도박에 열중하게 되었다. 1 달 동안 갖고 있던 돈의 2 배를 땄었다. 그러나 1 주일 만에 다시 딴 돈과 가지고 있던 돈 전부를 날려 버리고 나니 정말 허무했다.

제정신이 돌아올 무렵에 매형과 함께 수련회에 갔고 처음으로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때 나의 지나간 과거가 머리를 스치며 지나가기 시작하였으며 나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나만 믿고 나에게 온 아내!
예전에 순수함이 파괴된 아내!
미움과 증오와 고통만 받은 아내!
제대로 아들에게 아빠역할을 하지 못한 점들
아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들
아들에게 부모의 싸우는 모습만 보여준 죄책감들
나로 인해서 가족들과 처가 식구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었는가!
그들이 나에게 무슨 말들을 해왔던가!

하나님!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제가 두발로 떳떳하게 딛고 걸어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늘을 쳐다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십시오!

약 2시간 동안 울부짖었고 눈과 코에서는 구정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마음이 가볍고 평안하고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

수련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 왔을 때 아내는 이 선교사와 회복모임 여러 동료들의 전화가 왔었다고 알려 주었다. 도박에 미쳐서 극에 달했던 지난 3개월 동안 회복모임에 가지 않았을 때 이 선교사와 동료들이 여러 번 전화를 주었고 심지어는 이 선교사의 편지를 받고도 모임에 가지 않던 내가 아내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곧바로 회복모임에 참석했다.

회복모임에서 동료들과 함께 다시 회복을 배우면서 그들이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을 볼 때 나 자신도 변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매주 회복모임에 다니며 지금까지 7개월 동안 카지노에 가지 않을 수 있었다. 다음 달부터 우리 부부는 6개월간 봉사자 임무를 하게 되어 있다. 회복모임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려고 한다.

이 글을 빌어서 회복모임 참석 동료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며 회복치유를 위해서 수많은 자료수집과 좋은 말씀으로 깨우쳐 주신 이 선교사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특히 저를 항상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2001년 1월 24일

- 미국 LA에 사는 Mr. 김 -

4. 후회스러운 나의 도박생활


나는 1991년 봄에 부푼 꿈을 안고 미국에 이민 왔으나 이민 초기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다가 힘들이지 않고 쉽게 돈을 만져 볼 생각에 그해 여름부터 인근 카지노를 찾아다니기 시작하였다. 한탕주의 생각으로만 도박에 손을 대다 보니 자연히 카지노를 혼자 자주 찾게 되고 도박장 안의 홍색불빛 아래 앉아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냥 즐겁기만 했다.

도박장에 갈 때는 돈 사냥하러 간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일단 도박장 안에 들어서면 제 정신이 아니었다. 도박장 분위기부터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고 친절한 서비스에 빠지게 된다. 간혹 돈을 따는 때도 있었지만 카지노 안의 오색불빛은 또다시 나를 도박장으로 유혹해서 딴 돈의 몇 배를 잃을 경우가 허다했다. 아마 일년에 10여 만불 정도는 잃었을 것이다. 아무리 연구하여 보아도 더러 따기도 하는데 왜 결국 잃는지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대부분 카지노에 가면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도박을 하게 된다. 한번은 미시시피 지역에 있는 카지노에서 동전까지 다 잃고 차 Gas 비가 없어서 구걸하였으나 돈을 얻지 못하고 주머니에 있던 체크로 간신히 해결한 적도 있었다.

사실 나의 경우는 돈을 따는 횟수가 그리 적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박장에서 쉽게 딴 돈은 어차피 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이미 나는 도박에 중독이 되어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나의 중독증을 쉽게 고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도박을 끊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도 생겼다.

나는 금년 1월에 LA에 갈 일이 생겼다. LA 카지노는 내가 사는 지역의 카지노와는 다른 방식이어서 새로운 게임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2틀에 5천불을 딴 적도 있었으나 결국 딴 돈의 2배가 넘는 돈을 다시 잃어야만 했다. 이때 나는 자신이 너무 비겁하고 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민족들로 가득한 도박장 분위기는 마치 장터를 연상케 하였고 도박장에 온 사람들의 천태만상의 모습을 보며 나는 회의를 가졌다. 도박은 순간적인 현혹과 허욕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 후 나는 LA에 오기 전부터 아내가 꼭 가보라고 신신 당부하던 이 선교사가 있는 한인 중독증회복 선교센터를 구경삼아 가 보았다. 그날 저녁에 3 부부가 같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도박자 가족들이 남편의 도박으로 당한 정서적 고통을 말할 때는 마음이 아파 왔다. 그들과의 만남은 내가 참 마음으로 돌아서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나는 그 모임에서 도박이 정신병이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드리게 된 것이다. 그 좋던 도박이 싫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매주 협심자들과 만나 서로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의 마음도 점차 변화하게 되었다.

LA에서 떠날 비행기 표 예약 날짜가 1달이 더 남았으나 하루 빨리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어져서 예정일을 앞당겨서 집에 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안에서 지난 9년간 도박으로 잘못한 일들이 주마등같이 떠올라서 괴로웠고 돈이 쌍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잘 쓰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으나 도박판 같은 곳에다 쓰면 그 칼에 나 자신이 맞아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지긋한 도박생활의 굴래 에서 벗어날 새 생활 계획도 떠올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생과 금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 끝에 아직도 도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내 주위의 도박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서 남은 인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회복 봉사를 통해서 중독 도박이 얼마나 무서운 정신병인가를 증거 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 동안 나의 도박행각으로 고통을 받으며 끝까지 참고 견디어 준 가족과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중독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니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뿐이고 지난 9년의 긴 시간을 상실한 기분이다. 중독도박은 일년을 안 하고 나서야 일년을 안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배웠다. 아직은 다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러나 이제 회복은 시작되었고 12단계를 통한 회복을 열심히 실천하다 보면 언젠가는 회복될 것으로 믿는다. 우리 부부는 이 선교사의 권유로 나성 비디오 성서 통신대학과정을 등록하여 공부하고 있다. 언젠가 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다른 중독 도박자들을 돕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2000년 6월 29일

- 미국에 사는 한 회복자의 고백 -

5. 최후 최선의 선택 - 도박회복모임 참석 결심


저는 40대 중년 여성으로 4자녀를 둔 엄마 입니다.

5년 전 새로 시작하려던 비즈니스가 실패하고 1년간 쉬면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에 남편과 함께 동네카지노와 라스베거스를 오가며 적지 않은 돈을 잃으면서 도박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후회하면서 다시는 그런 곳에 발길을 두지 않겠다는 결심도 여러 번 했지만, 가족들 몰래 다녔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 심각한 문제가 없는 듯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자만심에 가족들의 만류를 듣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도박장에 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만 가서 힘들게 번 돈은 한 푼도 만질 수 없었고 아이들을 위한 곳에 쓰지도 못했습니다.

도박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깊은 늪으로 빠지는 듯했고 절망과 무기력함으로 고통스런 하루하루가 계속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능력한 엄마가 되어서 “방임” 이라는 학대 아닌 학대로 자녀들을 방치한 체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지조차 알 수 없었고, 자연 내 주위에 가족, 형제, 부모는 나를 포기하다 십이 하면서 지난 1년간은 연락을 하지 않은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잃는 아픔은 도박으로 인한 절망감보다 더 깊은 상처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최후 최선의 선택으로 나는 도박회복모임에 나갈 것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도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은 나의 수치심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고, 23살이 된 큰 아들을 선교센터 회복모임에 데리고 나오기로 까지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회복모임에 참석한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아들은 엄마를 좀 더 이런 회복모임에 일찍이 데려오지 못한 것을 많이 미안해하고 이었고 엄마에 대한 불시감과 분노가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난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한 달 전부터는 일요일에 선교센터에서 드리는 “회복 예배”에도 참석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3번 화요일과 금요일 도박회복모임 그리고 주일 회복 예배에 참석해서 온통 제 자신의 회복치료에 올인 하고 있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새로운 희망과 놀라움으로 지금의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고 있습니다.

처음 회복의 한 도구로 믿으려했던 것이 이제는 내 삶 전체를 내어 놓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 회복을 시작한지 3개월이 되어가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앞으로 언제 끝날지 모를 이 회복의 긴 여정을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아무런 두려움도 없게 되었습니다.

헛된 욕망과 쾌락은 우리가 가진 소중한 것과 결코 맞바꿀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문제로 많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살아오신 분들이 이제는 회복되어 새로운 삶을 살면서 봉사자로 후원자로 회복 선교센터를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는 삶을 산다면, 이전보다 더 큰 축복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금 이순간도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많은 도박 중독자 분들이 이곳의 문을 두들일 것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2011년 11월 6일

- 샌바나디노 카운티에서 Mrs. Kim -



알코올 회복사연


1. 회복 1년을 정리하며


지난 35년 그리고 회복의 삶 1년
삶의 무게를 다는 저울이 있다면
저는 분명코 회복의 삶 1년에
더 많은 비중을 두리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만큼 지난 1년은 제게 있어
전인생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믿음과 확신과 그리고 진정한 삶의
목표가 제시된 한해였다고
스스로 지난 1년을 자평해 봅니다.

지난 1 년전,
저의 알콜중독은 생각보다 심했었습니다.

아직도 술을 마시고 있을 당시
저는 역전에서 노숙을 하며
인생의 끝자락을 잡고
질기딘 삶을 근근히 무료급식에
의지하여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술병을 잡은 그 거무티티한 손
몇일 째 씻지 않아 쉰내 나는 속옷
때가 절어 썩은 내 나는 신발
반쯤 넋나간 듯 삶에 비소가 썩인 그 너털웃음
빈집을 찾아 쉴곳을 찾던 그 잘난 자존심
그곳에 저는 있었습니다.

저는 그당시 술잔에 눈물과 한숨을
털어 마시고 있었지만
그것이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알콜은 이미 가족을 상처냈고,
직장을 유린하였으며
저의 정신을 황폐화시켜
나의 마지막 남은 이성마져 짓밟고
저의 육신을 죽음속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알콜의 횡포는 집요했으며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저를 괴롭혔습니다.

잠을 자면 식은 땀이
비오듯 쏟아지었고 귓가에 피리소리는 갈수록 더해졌으며
눈은 충혈되어 아른아른 반딧불 불꽃이 일렁였습니다.
저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를 잃었습니다.
제가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예전의 저도 아니고 술취한
저도 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저 술을 마시고 싸움을 하며
아무에게나 시비를 붙었습니다.
그렇게 삶은 절망으로 내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는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것이 절망인지
그 당시 깨달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 그리고 어느날

병원 저는 거기 누워있었습니다
만취상태의 무단횡단,
저는 오른 쪽 다리 비골 골절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한 알콜치유공동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했습니다.

지난 1년간 그룹홈 형태의
그 공동체의 프로그램을 착실히
진행한 결과 예전의 넘지 못했던 과거를 알게 되었으며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아 가는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4명의 중독자들만 있는 작은 가정집
전도사를 비롯한 영적인 후원자.
그리고 하나님.

저는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제 삶에 주님을 의미있게 받아들인
그날을 생각하면

후기 --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시니 감사하네요

* 이 글은 월인님이 2004년 1월 9일에 “중독회복-천사들과 이해왕 선교사” 상담회복카페에 올려주신 귀한 회복내용입니다.

[나의 체험!] - 죽음보다 깊은 늪 - 도박회복


죽음보다 깊은 늪


도박중독!

죽음보다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은 15 년 전쯤 우연히 호텔 빠찡코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첫 날 우연히 큰 잭팟이 맞았고, 그 올가미가 나의 모든 것을 묶는 무서운 오랏줄이 될 줄은 그 때는 정말 몰랐다.

그 날 이후 줄곧 성인 오락실을 들락거리게 되었고, 서서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재정적인 문제, 직장 문제, 가정 문제 등이 생기게 되었다.

게임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시작했고 부채의 증가속도는 가히 기하급수적이었다.

밤새워 게임하기가 일쑤였고, 어떤 때는 직장도 가지 않으면서 게임에 몰두했다. 어린 아이들, 고생하는 아내, 직장에서 잘 돌보아주는 상사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당장 게임을 끊고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마음속의 외침이 강했지만, 그럴수록 강박감은 오히려 나를 더욱 깊은 도박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스스로 도박을 끊기 위해 다른 일에 몰두해 보자고 생각하고, 대학원을 진학하여 석사학위도 받았고, 외대 외국어 연수원을 수료하고 해외연수까지 갔다 왔지만, 나의 도박 병은 결코 수그러지지 않았다.

급기야 아내가 알게 되었고, 직장에서도 알게 되었다.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한다고 맹세하고 직장에 시말서도 수없이 썼지만 끊으려고 노력할수록 도박중독의 역풍은 거세어만 갔다.

아내가 “단도박 모임”을 알게 되어 모임을 다니면서부터 도박을 잠재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모임에 충실하였다. 그러나 재정적인 부담, 직장에서의 곤란, 가족들에게서의 멸시, 이런 것들을 이겨낼 힘이 내게는 없었다. 또다시 가만가만히 도박을 하게 되었고, 불법 하우스 등을 전전하면서 판은 점점 커가게 되었다.

보다 못한 여러 주위 분들의 권유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신병원도 나의 도박 병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스스로의 창피함, 직원들이 모두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고, 직장 일도 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도박판으로 쫓아갔다.

이제는 정신이 완전 공항상태였다. 그저 도박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면 머리부터 아팠고 도박판에 앉아 있을 때만 세상을 잊게 되는 심각한 강박환자로 변해갔다.

보증을 선 직장동료들에게 까지 피해를 입히게 되었고, 결국은 나와 10 여명의 동료들이 급여 압류를 당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21 년을 다닌 공직을 마감하면서 받은 1억 원의 퇴직금은 나의 부채를 막는 데 1/3도 모자랐다.

그나마 직장에서 배려해 준 덕에 산하기관에 관리자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고,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을 했고 가슴에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 가정에서도 웃음이 다시 피어나고 새로운 희망 속에 2년여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나와 상호 보증을 선 동료가 사라지는 바람에 나는 다시 큰 부채를 떠맡게 되었고 잠재되어 있던 내 도박병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막혀 있었던 도박에 대한 봇물이 터지자 걷잡을 수 없었다. 일확천금으로 부채를 깨끗이 청산하고 싶은 욕망에 판돈은 더욱 커져가고, 생활은 다시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었다. 다시 외박이 잦아지고, 직장을 빠지게 되고, 수레바퀴 같은 무서운 도박 사이클이 또 시작되었다.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직장에는 2 달간 무단결근을 하고 집에는 연락조차 없이 100 여일을 들어가지 않았다. 그간 조금 신용이 회복되어 은행에서 수천만을 카드로 수천만을 만들어 큰 판에 뛰어 들었다. 결과는 뻔한 것, 정말 삶의 희망이 없었다.

우연히 직장에 몰래 전화를 해서 동료들로부터 파면되었다는 것을 들었다. 별로 놀랄 일이 아니었다. 벌써 파면을 당해도 수십 번을 당해야 마땅했으니..

이제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가정도 직장도 친구도....
심각하게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죽음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 줄은 정말 몰랐다.

술을 죽을 때까지 먹고, 삼일 고가도로에 올라갔다. 그러나 여전히 달려오는 자동차 불빛이 눈에 들어오고 두려움이 느껴졌다. 한강다리를 어슬렁거렸지만 내가 수영을 너무 잘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뛰어들기 힘들었다. 수면제를 사서 먹었지만 여관에서 깨우는 바람에 살아났다.(사실은 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3월 추운 바닷가에서 술에 떡이 되어 잠을 잤다. 가장 편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누가 이야기를 해 주기에...

천만에, 아침에 일어나니 모래를 파고 들어가 눈만 내어놓고 살아 있었다. 죽음이 정말 어렵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저
멍하니 며칠을 보내다가 삶을 궁리하게 되면서 정수기 판매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옛날 나에게 신세를 진 업체들을 찾아가 강매를 하게 되었다. 어떤 업체에서는 아예 돈을 주는 곳도 있었다. 그 때의 그 자괴감이란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정수기 판매대금 700 여만 원을 손에 쥐는 순간 나는 또 헐크가 되었다.

하우스에서 또 다 날렸다. 이제 나에게서 아무 것도 빨아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안 하우스에서 500만원을 주었다.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면서...

이제는 정말 집에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전자오락실을 전전하면서 새우잠을 자고 그저 눈만 뜨면 오락기에 매달려 끝없이 자판을 두드렸다. 그러나 3 달 정도 있으니 그 돈도 다 떨어졌다. 그래도 갈 곳은 집뿐이었다. 멍하니 며칠 있다가 보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단돈 얼마라도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쳐다보니 아이들 컴퓨터 PC가 눈에 들어왔다.

즉시 현금화하여 1 주일 정도 게임을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게 유일한 나의 도피처였으니...

또 돈이 떨어졌다. 술을 잔뜩 먹고 집에 왔다. 고등학교 3 학년이던 아들이 나를 걷어찼다.

"당신, 나가시오. 아니면 경찰을 부르겠소. 왜 남의 가정에 와서 이렇게 행패를 부리는 거요?"

정말 슬펐다. 내가 사랑하는 내 아들이 이렇게 변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집이 아닌 어디에 내가 갈 곳이 있단 말인가?

그래도 나는 복이 많은 놈이다. 잘 아는 분이 “음성 꽃동네”를 추천해 주셨다. 가서 진실되이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 주문이셨다.

그저 밥을 얻어먹을 수 있고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에 꽃동네 봉사자로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다. 천방지축 날뛰는 수용자들!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하는 환자들이 30%는 되었다. 무엇이든지 입으로 들어가고, 아무데나 변을 보고, 잠시 눈 돌리면 무언가 사고를 치는 환자들!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왜 저들을 만들었으며 왜 데려가시지 않는가 하고. 그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3 달 정도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차츰 환자들의 눈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를 인정하는 눈빛, 내가 자기들을 돌보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 필요한 것을 바라는 애절한 눈빛(비록 먹는 것이지만)...

그렇다! 그들은 나의 작은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그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었다.

"아, 위대한 힘이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작은 사랑과 인간의 고귀함을 가장 못난 이런 정신병 환자에게서 배우게 해 주시다니요..."

사실, 그들의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그들의 눈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열게 된 것이었다. 멀쩡한 정신과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내가 문제이지, 그 환자들은 오히려 나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그 때부터 나의 생활은 확 바뀌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우리가 겉으로 보는 것은 너무나 단편적이요, 세상만사가 다 사랑과 배려의 눈길로 보면 아름다운 것을...

봉사에 대한 태도도 바뀌면서, 서서히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다. 자신에 대한 미움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위대한 힘께서는 내게 주시리라는 확신도 가지게 되었다. 꽃동네 봉사자로 평생 남기로 했다.

그러나 유급직원이 들어오면서 또 한번 나는 회오리바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금방 들어온 유급직원은 별로 일도 못하면서 한 달에 봉급을 받는데 기존 봉사자들은 무급이라는 사실이 좀 형평에 어긋나 보였다.

그러나 위대한 힘의 오묘한 조화를 미물인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내가 꽃동네에서 9 개월째 봉사를 하고 있을 때, 강원카지노에서 도박중독 전문상담원을 구한다는 것을 아는 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는 분의 추천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으며, 나의 과거의 도박에 대한 경험을 솔직히 이야기하게 되었고 나 같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더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견해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최고경영자가 흔쾌히 나를 뽑아 주었고 나는 전문상담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한국도박중독센터 전문상담원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중독자들을 접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도박중독증이 원래 그런 질병이지만, 자기 병을 자기가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각하게 느낄 때면 이미 재정적, 사회적, 법적, 가정적인 문제가 실타래처럼 엉킨 후이다.

따라서, 자신이나 가족 또는 친구 중 누군가가 도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꼭 전문치료나 상담을 받고, 평생 “단도박 모임”등 “자조모임(self-help)”을 다니면서 도박 욕망을 잠재우는 것이 필요하다.

조금 상황이 좋아지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 과거의 아픔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환상을 쫓아 불에 뛰어드는 불나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평생 단도박 모임에 충실하며, 다른 협심자를 위한 봉사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것만이 내가 살고 남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내가 살아남아 있는 것은 그래도 GA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티는 끈기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몰론 아내와 주위 협심자들이 따스한 사랑의 손길로 인도해 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오늘도 도박중독자들을 상담하면서 안타까움과 보람을 느낀다. 내가 어쩔 수 없었던 중독자와 자기를 돌아보며 절제의 생활을 다짐하는 중독자를 보면서 내가 늘 모자란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상담원의 일을 하면서, 나 자신의 도박병도 고치고, 또 월급까지 받고 있으니 나는 정말 복을 받은 사람이다.

사회적, 정책적인 도박중독 예방 및 치유 시스템이 구축되어 도박중독의 예방계몽과 중독자에 대한 치유 및 재활활동이 활발해지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신림 김님이 2003년 8월 12일에 “중독회복-천사들과 이해왕 선교사” 상담카페에 올려주신 내용으로, 원래 <KBS 건강생활>에 기고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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