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박중독!
죽음보다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은 15 년 전쯤 우연히 호텔
빠찡코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첫 날 우연히 큰 잭팟이 맞았고,
그 올가미가 나의 모든 것을 묶는 무서운
오랏줄이 될 줄은 그 때는 정말 몰랐다.
그 날 이후 줄곧 성인 오락실을 들락거리게
되었고, 서서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재정적인 문제, 직장 문제, 가정 문제
등이 생기게 되었다.
게임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시작했고 부채의 증가속도는 가히 기하급수적이었다.
밤새워 게임하기가 일쑤였고, 어떤 때는 직장도
가지 않으면서 게임에 몰두했다. 어린 아이들, 고생하는 아내, 직장에서 잘 돌보아주는 상사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당장 게임을 끊고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마음속의 외침이 강했지만,
그럴수록 강박감은 오히려 나를 더욱 깊은 도박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스스로 도박을 끊기 위해 다른 일에 몰두해 보자고
생각하고, 대학원을 진학하여 석사학위도 받았고, 외대 외국어 연수원을 수료하고 해외연수까지 갔다 왔지만, 나의
도박 병은 결코 수그러지지 않았다.
급기야 아내가 알게 되었고, 직장에서도 알게 되었다.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한다고 맹세하고
직장에 시말서도 수없이 썼지만 끊으려고 노력할수록 도박중독의 역풍은
거세어만 갔다.
아내가 “단도박 모임”을 알게 되어
모임을 다니면서부터 도박을 잠재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모임에 충실하였다. 그러나 재정적인 부담, 직장에서의 곤란, 가족들에게서의 멸시, 이런 것들을 이겨낼
힘이 내게는 없었다. 또다시 가만가만히 도박을 하게
되었고, 불법 하우스 등을 전전하면서 판은 점점 커가게 되었다.
보다 못한 여러 주위 분들의 권유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신병원도 나의 도박 병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스스로의
창피함, 직원들이 모두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고, 직장 일도 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도박판으로 쫓아갔다.
이제는 정신이 완전 공항상태였다.
그저 도박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면 머리부터 아팠고 도박판에 앉아
있을 때만 세상을 잊게 되는 심각한 강박환자로
변해갔다.
보증을 선 직장동료들에게 까지 피해를 입히게 되었고, 결국은 나와 10 여명의 동료들이
급여 압류를 당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21
년을 다닌 공직을 마감하면서 받은 1억 원의 퇴직금은
나의 부채를 막는 데 1/3도 모자랐다.
그나마 직장에서 배려해 준 덕에 산하기관에 관리자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고,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을 했고 가슴에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 가정에서도
웃음이 다시 피어나고 새로운 희망 속에 2년여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나와
상호 보증을 선 동료가 사라지는 바람에 나는 다시 큰 부채를 떠맡게
되었고 잠재되어 있던 내 도박병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막혀 있었던 도박에 대한 봇물이 터지자
걷잡을 수 없었다. 일확천금으로 부채를 깨끗이 청산하고 싶은 욕망에
판돈은 더욱 커져가고, 생활은 다시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었다.
다시 외박이 잦아지고, 직장을 빠지게 되고, 수레바퀴 같은 무서운 도박 사이클이
또 시작되었다.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직장에는 2 달간 무단결근을 하고 집에는 연락조차 없이 100
여일을 들어가지 않았다. 그간 조금 신용이 회복되어 은행에서 수천만을
또 카드로 수천만을 만들어 큰 판에 뛰어 들었다. 결과는
뻔한 것, 정말 삶의 희망이 없었다.
우연히 직장에 몰래 전화를 해서 동료들로부터 파면되었다는
것을 들었다. 별로 놀랄 일이 아니었다. 벌써 파면을 당해도 수십
번을 당해야 마땅했으니..
이제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가정도
직장도 친구도....
심각하게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죽음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 줄은 정말 몰랐다.
술을 죽을 때까지
먹고, 삼일 고가도로에 올라갔다. 그러나 여전히 달려오는 자동차
불빛이 눈에 들어오고 두려움이 느껴졌다. 한강다리를 어슬렁거렸지만
내가 수영을 너무 잘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뛰어들기 힘들었다.
수면제를 사서 먹었지만 여관에서 깨우는 바람에 살아났다.(사실은
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3월 추운 바닷가에서 술에 떡이 되어
잠을 잤다. 가장 편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누가 이야기를
해 주기에...
천만에, 아침에 일어나니 모래를 파고 들어가 눈만 내어놓고 살아 있었다. 죽음이
정말 어렵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저 멍하니 며칠을 보내다가 삶을 궁리하게
되면서 정수기 판매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옛날 나에게
신세를 진 업체들을 찾아가 강매를 하게 되었다. 어떤 업체에서는
아예 돈을 주는 곳도 있었다. 그 때의 그
자괴감이란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정수기 판매대금 700
여만 원을 손에 쥐는 순간 나는 또 헐크가 되었다.
하우스에서 또 다 날렸다. 이제 나에게서
아무 것도 빨아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안 하우스에서 500만원을 주었다.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면서...
이제는 정말 집에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전자오락실을 전전하면서 새우잠을 자고 그저 눈만
뜨면 오락기에 매달려 끝없이 자판을 두드렸다. 그러나 3 달 정도 있으니 그 돈도 다 떨어졌다. 그래도
갈 곳은 집뿐이었다. 멍하니 며칠 있다가 보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단돈 얼마라도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쳐다보니 아이들
컴퓨터 PC가 눈에 들어왔다.
즉시 현금화하여 1 주일 정도 게임을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게 유일한 나의 도피처였으니...
또 돈이 떨어졌다. 술을 잔뜩 먹고
집에 왔다. 고등학교 3 학년이던 아들이 나를 걷어찼다.
"당신, 나가시오. 아니면 경찰을 부르겠소. 왜
남의 가정에 와서 이렇게 행패를 부리는 거요?"
정말 슬펐다. 내가 사랑하는 내
아들이 이렇게 변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집이 아닌 어디에
내가 갈 곳이 있단 말인가?
그래도 나는 복이 많은 놈이다. 잘 아는 분이 “음성
꽃동네”를 추천해 주셨다. 가서 진실되이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 주문이셨다.
그저 밥을 얻어먹을 수 있고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에 꽃동네
봉사자로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다. 천방지축 날뛰는 수용자들!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하는
환자들이 30%는 되었다. 무엇이든지 입으로 들어가고, 아무데나 변을 보고, 잠시 눈 돌리면 무언가 사고를 치는 환자들!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왜 저들을 만들었으며 왜 데려가시지 않는가 하고. 그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3 달 정도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차츰 환자들의 눈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를 인정하는 눈빛, 내가 자기들을 돌보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 필요한 것을 바라는 애절한 눈빛(비록 먹는 것이지만)...
그렇다! 그들은 나의 작은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그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었다.
"아, 위대한 힘이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작은
사랑과 인간의 고귀함을 가장 못난 이런 정신병 환자에게서 배우게 해 주시다니요..."
사실, 그들의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그들의 눈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열게 된 것이었다. 멀쩡한 정신과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내가
문제이지, 그 환자들은 오히려 나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그 때부터 나의 생활은 확 바뀌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우리가 겉으로 보는 것은 너무나 단편적이요, 세상만사가 다 사랑과
배려의 눈길로 보면 아름다운 것을...
봉사에 대한 태도도 바뀌면서, 서서히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다. 자신에 대한 미움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위대한 힘께서는 내게 주시리라는 확신도 가지게
되었다. 꽃동네 봉사자로 평생 남기로 했다.
그러나 유급직원이 들어오면서 또 한번 나는 회오리바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금방 들어온
유급직원은 별로 일도 못하면서 한 달에 봉급을 받는데 기존 봉사자들은 무급이라는 사실이 좀 형평에
어긋나 보였다.
그러나 위대한 힘의 오묘한 조화를 미물인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내가 꽃동네에서 9 개월째 봉사를
하고 있을 때, 강원카지노에서 도박중독 전문상담원을 구한다는 것을 아는 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는 분의 추천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으며, 나의 과거의 도박에 대한 경험을 솔직히 이야기하게
되었고 나 같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견해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최고경영자가 흔쾌히 나를 뽑아 주었고 나는 전문상담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한국도박중독센터 전문상담원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중독자들을 접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도박중독증이 원래 그런 질병이지만, 자기
병을 자기가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각하게 느낄 때면 이미 재정적, 사회적, 법적, 가정적인 문제가
실타래처럼 엉킨 후이다.
따라서, 자신이나 가족 또는 친구 중 누군가가 도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꼭 전문치료나 상담을 받고, 평생 “단도박 모임”등 “자조모임(self-help)”을
다니면서 도박 욕망을 잠재우는 것이 필요하다.
조금 상황이 좋아지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 과거의
아픔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환상을 쫓아 불에 뛰어드는
불나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평생 단도박 모임에 충실하며, 다른
협심자를 위한 봉사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것만이 내가
살고 남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내가 살아남아 있는 것은 그래도 GA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티는 끈기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몰론 아내와 주위 협심자들이 따스한 사랑의 손길로 인도해
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오늘도 도박중독자들을 상담하면서 안타까움과 보람을
느낀다. 내가 어쩔 수 없었던 중독자와 자기를 돌아보며 절제의 생활을 다짐하는 중독자를 보면서 내가 늘 모자란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상담원의 일을 하면서, 나 자신의
도박병도 고치고, 또 월급까지 받고 있으니 나는 정말 복을 받은 사람이다.
사회적, 정책적인 도박중독 예방 및 치유 시스템이
구축되어 도박중독의 예방계몽과 중독자에 대한 치유
및 재활활동이 활발해지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신림 김님이 2003년 8월 12일에 “중독회복-천사들과
이해왕 선교사” 상담카페에 올려주신 내용으로, 원래 <KBS
건강생활>에 기고했던 글이라고 합니다.
|